보수언론은 왜 16명의 인질이 되었나 ― 조중동 등 보수언론의 집단 히스테리와 공천 정치의 민낯

 


1월 30일 아침, 조중동 보수언론,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의 신문 1면과 네이버 포털을 장식한 기사들을 보며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과연 언론인가. 아니면 한동훈이라는 우상을 잃은 집단의 곡소리인가.

한동훈 재명 결정 직후 쏟아진 기사들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당이 쪼개진다”, “지방선거는 끝났다”, “보수의 미래가 사라졌다”.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절규처럼 포장됐지만, 그 속내는 너무도 노골적이다.

보수 결집이 아니라 기득권 붕괴에 대한 공포, 자신들이 길들이던 가두리 양식장이 무너졌다는 비명에 가깝다.


108명 중 16명, 언론은 왜 이 소수에 목숨을 거는가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108명이다. 그중 ‘친한계’로 분류되는 의원은 고작 16명, 비율로 따지면 14.8%다. 그마저도 실제로 소리를 높이는 핵심 인물은 4~5명 수준이다.

그런데 조중동은 이 16명을 보수 전체의 분열처럼 확대 재생산한다. 85%의 침묵하는 다수, 당의 결정을 수용하고 질서를 지키는 의원들과 60%를 넘는 당심은 철저히 지워버린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15%를 100%로 보이게 만들어야 ‘위기’라는 서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보수 결집’이 아니라 ‘공천 생존’의 몸부림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이 16명의 행동은 보수 결집을 위한 투쟁이 아니다.

지역구 의원들은 이미 ‘한동훈계’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 상태로 한동훈이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면, 다음 공천은 사실상 불확실하다. 그러니 한동훈을 다시 데려와야 정치적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더 노골적이다. 한동훈이 다시 비례를 주거나, 지역구 공천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갈 곳이 없다.

즉, 이들의 외침은 ‘보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살려달라’는 개인 생존의 아우성이다.

그런데도 보수언론은 이를 ‘합리적 보수의 저항’, ‘중도 확장의 마지막 보루’로 미화한다. 이 얼마나 기괴한 논리인가.


민주당은 한다, 그런데 보수는 왜 못하나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은 이런 국면에서 훨씬 냉정하다.

이재명은 내부 총질러를 정리했고, 정청래는 노선 이탈자에게 단호하다. 그래서 민주당은 단일대오를 유지한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같은 선택을 하자 보수언론은 “민주주의의 사망”을 운운한다.

왜 민주당이 하면 ‘결단’이고, 국민의힘이 하면 ‘자해’인가.

차라리 말해라. 보수가 단결하면 불편하다고. 자신들이 더 이상 조종할 수 없어서 두렵다고.


이번 제명은 징계가 아니라 ‘언론 권력’에 대한 독립선언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한 정치인의 퇴장이 아니다. 이것은 당원 혁명이다.

그동안 보수 정치는 조중동이 아침에 방향을 정하고, 정치인이 따라가고, 지지자들은 끌려가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사설과 종편 패널의 읍소에도 당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정보를 스스로 판단했고, 언론의 가스라이팅을 거부했다.

그래서 지금 조중동은 광분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더 이상 보수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은 누구 편인가

보수를 위한다면, 공천 정치에 매달린 소수를 감싸는 것이 아니라 당심과 대중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단일대오를 막고, 결단을 저주하며, 공포 마케팅으로 협박하는 언론은 더 이상 보수 언론이 아니다.

이제 질문해야 한다.

보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언론은 국민을 대변하는가,
아니면 정치 브로커의 확성기인가.

보수가 다시 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한 사람의 복귀가 아니라 기득권 언론과의 결별일지도 모른다.


TheGraceHer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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