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하는 신용도가 높은 사람이 벌 받는 나라, 정책이 도덕을 무너뜨렸다

 JayGee's Economic Review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가장 위험한 인식은 더 이상 “투기 심리”가 아니다. 지금 확산되고 있는 것은 “성실하면 손해 보고, 빚지면 보호받는다”는 집단적 학습이다. 이 인식은 자연 발생적 현상이 아니라, 정책이 반복적으로 주입한 결과다.

그 상징적 장면 중 하나가 있다.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이 성실히 빚을 갚고 꾸준히 저축해 신용도가 높은 사람에게는 더 많은 이자를 부담시키고, 빚진 사람에게는 금리를 낮춰줘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논란이다. 발언의 정확한 표현을 떠나, 문제는 그 철학이다. 정책의 기준이 ‘성실함’이 아니라 ‘부채 상환 불성실자’로 이동하는 순간, 사회의 도덕적 나침반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금리는 원래 위험에 대한 가격이다. 돈을 빌린 사람이 갚지 못할 가능성이 클수록 금리는 높아지고, 성실히 저축한 사람은 안정성에 대한 보상으로 이자를 받는다. 이것이 금융의 기본 질서다. 그런데 정부와 정책 당국이 이 질서를 거꾸로 설계하기 시작했다.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춰 빚진 사람의 부담을 덜어주고, 그 비용은 예금 금리 억제와 통화 팽창을 통해 성실히 저축한 사람과 신용도가 높은 사람에게 전가했다.

결과는 명확하다.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은 실질 구매력을 잃었고, 대출을 최대한 끌어다 쓴 사람은 영끌로 사들인 자산 가격 상승과 저금리라는 이중 혜택을 누리게 된다. 정책은 사실상 “빚을 지면 국가가 위험을 분담해 주겠다”는 신호를 보냈고,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저축은 어리석은 선택이 되었고, 레버리지는 합리적 전략이 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일시적 조치가 아니라 구조로 굳어졌다는 점이다. 부동산 가격 하락을 두려워한 정책 당국은 구조조정을 미뤘고, 그 대가로 통화량을 과도하게 늘렸다. 금리는 경제 상황이 아니라 정치적 고려에 의해 결정되었고, 금융 시스템은 위험을 평가하는 기능을 잃었다. 그 결과 ‘성실한 납세자·저축가’는 보이지 않는 세금을 내고, ‘과도한 차입자’는 보호받는 기형적 분배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청년 세대가 받은 메시지는 잔혹하다. 성실하게 일해 돈을 모아서는 집을 살 수 없고, 빚을 최대한 끌어다 써야만 자산 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는 신호다. 이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정책이 강요한 선택이다. 정부가 의도했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를 고위험 도박판으로 몰아넣은 셈이다.

정책은 가치 판단이다.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에게 책임을 지울 것인지를 선택하는 행위다. 저축을 벌주고 부채를 보조하는 정책이 반복될수록, 사회는 더 많은 빚을 요구받고 더 큰 불안을 떠안게 된다. 지금의 강남 부동산 집착 역시 이 구조 속에서 탄생했다.

국가는 언제부터 성실함보다 부채를 우대하는 존재가 되었는가. 위험을 감수한 선택과 무모한 선택을 구분하지 않는 정책은 과연 정의로운가. 그리고 이 왜곡된 신호가 만들어낼 다음 위기의 비용은, 결국 누가 감당하게 될 것인가.


TheGraceHer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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