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란과 이스라엘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는가 – 역사로 본 양국의 적대의 뿌리
글 | 진종구
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이 지역에서, 가장 첨예하고 해결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다면 단연 이란과 이스라엘의 대립이다. 단순한 국경 분쟁이나 이념 갈등을 넘어, 양국의 적대 관계는 오늘날 중동 질서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란과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우호적이었던 시절이 있었으며, 전략적 동반자로 긴밀히 협력한 시기마저 존재했다. 그렇다면 양국은 왜, 언제, 어떻게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을까?
기원전 6세기 – 고레스 대왕의 유대인 해방
이란과 이스라엘의 인연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고레스 대왕)는 바빌론을 정복한 뒤 유대인을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켰다. 이는 유대 역사상 매우 우호적인 사건으로, 고레스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까지 허용하며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했다. 이러한 배경은 이후 오랜 세월, 이란 내 유대인 공동체의 뿌리가 되었고, 양국의 관계는 비교적 평화롭게 지속됐다.
20세기 중반 – 팔라비 왕조와 이스라엘의 전략적 우호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 중동 국가들 대부분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1950년, 팔라비 왕조 하의 이란은 터키에 이어 두 번째로 이스라엘을 국가로 승인하고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국왕은 세속화와 친서방 노선을 추진하며, 이스라엘과 군사, 정보, 석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심화시켰다.
1970년대 중반까지 이란은 이스라엘의 핵심 우방 중 하나였다. 이란산 석유는 에일라트 항을 통해 이스라엘로 수출되었고, 양국은 미사일, 레이더 등 군사기술을 공동 개발했다. 이 시기 이스라엘 국영 항공사 엘알은 테헤란 직항 노선을 운영했으며, 이란 내 유대인들은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1979년 – 이슬람 혁명과 관계의 급변
양국 관계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전환점을 맞는다. 호메이니가 이끄는 신정 체제는 미국을 '큰 사탄', 이스라엘을 '작은 사탄'으로 규정하며 즉각 국교를 단절했다. 테헤란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은 철수되었고, 그 자리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대표부로 바뀌었다. 이는 단순한 외교 단절이 아니라, 이란이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정치·이념적 선언이었다.
1980~1988년 – 이란-이라크 전쟁과 숨겨진 이스라엘의 지원
흥미로운 사실은, 겉으로는 철저히 적대했던 이란이 1980년 이라크와 전쟁에 돌입하면서 오히려 이스라엘의 '비공식적인 도움'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더 큰 위협으로 간주했고, 미국과 협력하여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는 '이란 콘트라' 사건의 일원이 되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이란은 이를 전면 부인했고, 양국은 다시 극한의 적대 관계로 돌아갔다.
1990~2000년대 – 대리전을 통한 충돌의 확대
1990년대 이후, 이란은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등 이스라엘을 겨냥한 무장 세력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 이란의 지원은 자금, 무기, 군사 훈련까지 포함되며, 이들 조직은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거나 국경 인근에서 무력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이로써 양국 간의 적대는 단순 외교 갈등이 아닌 '실질적 전쟁 상태'로 격화된다.
시리아 내전, 이라크 내전 등에도 이란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이스라엘과의 군사적 접점을 확대해 왔고, 이스라엘은 이에 공습 등 군사적 대응을 이어가며 전면전 직전의 국면을 반복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 지정학적 판도 변화와 외교의 재편
2010년대 들어 미국의 중동 전략이 변화하고,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UAE, 바레인 등 일부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수교에 나서면서 이란은 더 고립되었다. 이에 따라 이란은 더욱 강경한 반이스라엘 노선을 택하게 되었고, 이스라엘 역시 이란의 핵 개발과 군사 팽창을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여 예방적 공격까지 고려하는 상황이다.
특히 이란은 자신을 ‘이슬람 세계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이스라엘과의 적대 구도를 체제 결속 수단으로 삼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란을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유일한 국가’로 간주하고 있다.
2020년대 – 적대적 공생, 풀릴 기미 없는 대립
최근 이란은 중동에서 유일하게 이스라엘과 대화를 전면 차단하고 있는 국가이며, 국적자 입국 금지, 대리 무장 세력 지원, 이스라엘의 물리적 파괴를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란의 군사 시설을 선제적으로 타격하고, 국제 사회에 이란 제재를 촉구하며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란과 사우디가 외교 관계를 복원한 것과 달리, 이스라엘과의 화해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
맺음말 – 단절된 외교, 되돌릴 수 없는 감정
오늘날 이란과 이스라엘의 적대는 단순한 국익의 충돌이 아니다. 이는 이슬람 혁명 이후의 체제 정체성, 종교적 신념, 지정학적 위기감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이다. 불과 50년 전까지 전략적 동반자였던 두 나라가 이제는 핵과 미사일을 겨누는 적이 된 현실은, 국제 정치에서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교훈을 다시금 일깨운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중동에서 가장 위험한 불씨는 바로 이 양국의 갈등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외교는 단절되었고, 신뢰는 무너졌으며, 적대는 체제 유지의 명분이 되었다. 평화를 말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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